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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과 읽는 것의 경계,

김혜영의 「Impossible Possibility Project」

 

 

김 복 영 미술평론가⋅서울예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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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은 1999년 데뷔 개인전을 가질 때부터 캔버스 대신 금속이나 밀랍, 플라스틱, 투명막 같은 혼합재료를 사용하고 금속을 절삭하거나 용접해서 일그러진 이미지나 흔적같은 형상을 표출해왔다. 2천 년대 초부터는 철사 줄을 철판에 설치하고 철사 사이를 플라스틱이나 한지를 잇대어 평면을 만드는가 하면, 알루미늄이나 철프레임에 스틸 선을 세워 선들의 사이를 접합해서 색료를 채우고 이미지를 설채하는 방식을 전개하였다.

근작들에서는 스틸프레임에다 좁고 균질한 간격으로 구멍을 내, 가는 스틸선을 세우고 스틸선들을 알루미늄 철사로 엮어 실루엣의 분위기를 만들거나 일부에 평면을 채우는 고단한 작업을 강행하고 있다. 세워진 스틸선들에는 아크릴물감으로 무지개를 연상시키는 패턴을 그리거나 에나멜로 전쟁이미지의 실루엣을 재현한다. 스틸 선들의 중간과 중간에는 길고 짧은 수평 띠를 고정시켜 수직만이 아니라 수직수평의 교각交角을 만들어 남북의 면적대비나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기호로 삼는다. 뒤쪽 철판의 배경에는 남북분단의 사연을 담은 실루엣을 넣어 전경과 선후 간 이미지의 앙상블을 시도한다.

이번 전시작에서 작가가 시도하는 전경前景은 그 이전부터 구상해왔던 딩뱃ding‐bat 장식괘를 이용함으로써 차별적 성격을 드러낸다. 작가가 도입한 낱 소리에 이미지를 부여하고 텍스트를 조합하는 과정에는 임의의 규칙이 도입된다. 예컨대, 이번의 경우, ‘ㄴ’에 2분음표를 배당하고 ‘ㅏ’에 사과를, ‘ㅁ’에 둘잇단 16분음표를, ‘ㅜ’에 128분음표를 각각 배당하는 걸 규칙으로 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2분음표(󰁝), 사과(󰂎), 둘잇단 16분음표(♬), 128분음표( )를 순서쌍으로 묶어 ‘나무’의 어휘를 나타낸다.

이러한 제작 방식은, 이를테면 쉘 실버스타인Shell Silverstein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 동화이야기를 빌려 작품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예를 보여준다. 김혜영의 작업 의도는 이 때문에 보는 것과 읽는 것을 하나로 아우름으로써, 양자 간의 경계를 회화적으로 표출하고자 한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평면과 공간의 결합작업 후, 스틸선의 특정 길이를 자음과 모음 각 14개를 합친 28등분으로 하였다. 각각의 음소가 차지하는 위치를 채색하는 방식으로 나무의 이름을 구절들로 나타내었다. 스틸 선들은 세로로 배열되어 있지만 가로 방향으로도 몇 개 더 들어간다. 희생이나 사랑 등 나무가 갖는 보편적 의미를 표현하고자 철 프레임을 다시 28등분하여 가로배열의 스틸선을 넣고 채색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지개는 스틸선 184개위에 문구를 표현한 것이며, 채색은 가로 130cm를 7등분하여 왼쪽부터 점차 무지개 색으로 칠해감으로써 한 세트의 스틸선이 채색되고, 그 끝에 위치하는 낱 소리를 순차적으로 조합하면 문구를 해석해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전쟁과 분단이라는 비극으로 인한 상처와 소외, 현대인의 아픔 등을 초월과 사랑과 관심, 배려와 자기희생의 자세로 극복해나가는 의지가 드러나기를 바란 것이다”(「작업연구노트」2011, 4).

그의 작업 의도는 무엇보다 딩뱃 규칙에 의한 스틸선 상에 자획의 기호를 허용함으로써, 기호들을 암호로 읽어야 할뿐 아니라, 기호들의 배열위치와 컬러패턴, 그리고 배경의 실루엣이 만들어내는 토탈 이미지를 보게 하는 데 있다. 더 정확히 말해서, 보아야할 것과 읽어야 할 것의 ‘경계’borderline에 주목할 걸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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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이 어떠한 연유에서 이들의 경계에 주목하고자 했는지는, 작가 자신의 언급을 빌리자면 2007년 「Belgium Lineart Fair」에 참가하면서다. 당시를 작가는 이렇게 회고한다. “나의 근작들은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틈이라는 테제에서 영감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테제가 물음을 야기하는 건 인간과 인간의 퍼스펙티브, 다시 말해서 세계를 보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사이버 시대의 미적 요인들과 기술들이 생산해내는 이미지들은 볼 수는 있으되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기에 그 난해함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이 이미지들을 보고 있는 사람은 그 이미지가 무얼 지시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작품을 통해서 보는 것과 읽는 것, 나아가서는 보여지는 사물과 이것들을 해석하는 행위 간에 존재하는 틈새에 주목하지만, 이에 관해서 나 나름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영문 작업노트」, 2007).

여기서 작가가 지향하고자 하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모더니즘의 기하학적 추상에서 떠나 사이버 시대의 디지털미학이 추구하는 환영의 깊이를 보여주는 거라면, 다른 하나는 과학시대의 부산물에 의한 차별적인 방법으로 명멸하는 찰라의 세계를 다룸으로써, 일상의 세계를 낯설고 가상적인 이미지로 전향시킨다는 것이다.

김혜영이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보는 것과 보여지는 세계의 간극gulf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와 같은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간극이란 보는 세계와 보여지는 세계를 일치시키려던 근대미술의 핫 잇슈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탈근대주의자들이 발벗고 나섰던 걸 잊어서는 안된다. 김혜영은 근자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틈새에 주목하는 탈근대주의적 해법을 떠나, 보는 것과 읽는 것의 경계에 주목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기한다.

흔히 경계는 임의의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이기에 그 두 세계에서 보자면 변방fringe area을 뜻한다. 변방은 말 그대로 두 세계에서 밀려난 소외 지역이다. 그래서 간극이나 틈새와 동의어로 사용된다. 한 나라로 말하자면 이웃 나라와의 접경지역이다. 경계는, 비유하자면 주체를 상실한 자들의 서식처다. 범법자들과 각종 이유로 쫓기는 자들의 은둔처가 아닐 수 없다.

애초, 이러한 의미의 경계를 시사하는 말이 김혜영의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틈새’였다. 작가는 2006에서 2008년에 이르는 비교적 일천한 기간에 이 점에 주목한 바 있다. 그러던 그녀가 근작에서는 이 틈새를, 이를테면 ‘보는 것과 읽는 것의 경계’라는 새 변수를 도입함으로써 보다 극명하게 드러내고자할 뿐 아니라 그 위상을 새로운 방향에서 모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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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 내놓고 있는 「Impossible Possibility Project」는 종래의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문제를 뛰어 넘어, 보는 것과 읽는 것과 관련한 인간의 인지활동의 드넓은 지역으로 관심을 확장한다. ‘불가능한 가능성의 계획’ 이라는 뜻의 작품 명제는 우리 시대의 부조리를 고발하면서, 부조리의 늪에 내던져져 있는 오늘의 인간조건을 응시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알베르 까뮈는 부조리야 말로 본질적인 관념이고 제 1의 진리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인간이야 말로 거대한 부조리를 이겨낼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생각하고 또 희망한다. 논리로는 생각할 수 없는 근거와 믿음이라도 그러한 아이러니한 발상과 미지의 것을 향한 두려움 없는 걸음이야 말로 ‘불가능한 가능성’을 가능케 할 거라고(「작업 연구 노트」 2011, 4).

 

근작들은 명제가 함의하는 것처럼, 우리 시대의 비극적 인간조건과 관련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가는 이 메시지를 ‘보는 것’과 ‘읽는 것’을 하나로 아울러 전하고자 한다. 오늘날, 가까이는 우리 민족이, 멀리는 인류가 맞고 있는 전대미문의 비극적 상황을 드러냄에 있어,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기에, 예술이라는 방법적 수단을 빌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테면, 보는 것과 읽는 것의 경계를 부각시킴으로써, 소외를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인간의 근원적 부조리를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걸 말하고자 한다.

작가는 이를 위해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알레고리로 등장시킨다. 작가 자신이, 이를 말하고자 작품 안에서는 물론 배후에 등장해서 .야기의 주체로 활동한다. 화자story teller로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건 우리 시대의 최대의 부조리이자 지구촌에 한 곳 밖에 없는 ‘남북분단’이라는 비극이다. 이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역설의 알레고리로 등장시킨다. ‘나무’의 자획을 딩뱃으로 스틸링한 근작의 제작 방법이 여기서 연유했다.

근작들은 이를 형상화하기 위해 오늘의 첨단 과학과 디지털 기술이 지배하는 세계와 유비적 관계를 시도한다. 과학기술과의 유비적 관계의 매개체로서 스틸선들과 디지털 유비로서 딩뱃 규칙을 등장시켜, 오늘의 신인류가 맞고 있는, 이를 테면 남북분단과 같은 비극적 상황을 유비적으로 부각시킨다. 겉보기에, 근작들은 다분히 뉴모더니즘적 분위기를 드러내지만, 이는 단지 우리 시대의 예술이 갖추어야할 알레고리의 면모를 절절히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보는 것과 읽는 것의 경계를 부각시키고자 한다. 이야말로 오늘의 예술이 걸어야할 필연의 길을 김혜영의 근작들은 보여준다.

2011, 5

 

 

 

Borderlines between Looking and Reading,

Kim Hye-Young's 「Impossible Possibility Project」

 

 

Kim Bok-Young

Art critic,

Master Professor in Seoul Institute of the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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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1999 when she took her first exhibition for debut, Kim Hye-Young has used mixed media, instead of canvases, such as metal, bee-wax, transparent veil to be cut or welded, and has put them into distorted images with traces. On and after beginning of 2000's she has set up iron-wires on the iron plate and made a plane surface to be joined with plastic or Korean paper, and developed a new style of stainless steel lines fixed on the hole of aluminum or iron frame, filled and painted with pigment on the surface.

In recent works, the artist enforces her hard craft work to make a little holes in the metal frame with same interval, and makes stainless steel lines stand and knit them with aluminum lines to represent a silhouette imagery and so often add for it plane surface. She used to paint rainbow pattern on the surface of lines with acrylic paint, or encrust war scenary with enamel. On the vertical steel lines, he belays a horizontal long and short bar as a sign to communion with different area of South and North Korea and to symbolize the pain of partition of the territory. In this way, she tries to do with an ensemble between front and back space of the work.

In the works of this exhibition, the artist makes use of so called ding-bat decorative layout scheme in the fore-ground, which has been devised earlier on a textural composition. She composed of her images with a sound pattern of words, for an instance, to distribute a half note to the sign of ‘ㄴ’, to do a apple to 'ㅏ', to do a duplat sixteenth note to that of ‘ㅁ’, to do a half sixty fourth note to ‘ㅜ’ as a rule. In result, she acquires a kind of ordered pairs such as a half note(󰁝), apple(󰂎), a duplat sixteenth note(♬), a half sixty fourth note( )to signify the word ‘tree’. This way to work shows how she makes her images of the work. She borrows so accustomed story of tree to give away freely, which can be read in a juvenile story of The Giving Tree by Shell Silverstein. Kim Hye-Young's working idea, for this reason, lies in inquiry into how to represent the borderlines of looking and reading, in a way of joint together in painting. She says on her recent works. “I set up a coupling of surface plane and space, and then divided the given length of strainless steel lines into equal twenty-eight parts which summed up the number of consonant and vowel sound in all. Those are the place for each phoneme to take it's linguistic position of the word ‘tree’. The steel lines are displayed lengthwise but severals crosswise. They means sacrifice or love in general of tree, for which steel frames are divided into the same twenty-eight parts and on them crosswise steel lines are set up and colored as a cautious way. Lastly, the rainbow pattern are touched on the total 184 parts of line-segments. they make a text of colors which were painted from the left to the right to be seen a gradual appearance of curve lines. They are made of seven segments of 130cm cross, and in turn, we can interpret a set of steel lines colored as a text, if we may combine in the mind the partial sound serially.

By means of it the artist hopes that the alienation, tragedy of war, partition of the peninsula, trauma, say, so many human poignant in korea today could be healed. For this, we must lay down our egoism, and devote our love and benevolence, scrupulous care and self-sacrifice”(「Note on works」, 2011, 4).

Her intention lies in it that the spectators must not only read the signs of her as a cipher-text which is programmed in a mode of ding-bat on the steel lines system, but also look the total images of color patterns of the foreground and silhouettes of the rear. More strictly speaking, we must gaze at the borderline of the two worlds of to look and to read in her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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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ot Kim Hye-Young pays attention to the borderline of the two worlds dates back to the time of her first participation in Belgium Linear Fair, 2007. She says her memorandum at that time as followings. “My recent works has been inspired by a theme named "a gulf between to see and to be seen". The theme also raises the question about human life and it's perspective, say, from which perspective to view the world. The images derived from the aesthetical factors and techniques of the cyber era are visible but inexistent, with the purpose of revealing the abstruseness hard to understand. One who is seeing those images does not know what they are. Through my works, I would like to tell my different stories about the gulf between seeing and reading, or between the objects seen and the act of interpreting those objects”(「Note on works」, 2007).

Here, what the artist says is two. One is, apart from the geometrical abstraction of modernism, to reveal the subtlety of illusion dealt in the digital aesthetics, the other an endeavor to reveal it's momentary and instant world to treat with byproduct of the scientific age, and to convert a banal objects into a completely different type of unfamiliar fictitious image in a different way.

Kim Hey-young should manage to be sure of how to solve the gulf of the worlds of seeing and seen. Her gulf is used to be said to be a key word for modernists to vindicate themselves their unconfirmable, coincident reality between to see and to be seen, and so we must keep it ever clearly in mind that to solve the problem, postmodernists throw themselves into the problem with eagerness. Kim Hye-young recently propose to solve the problem of gulf in a new way to present the borderline. as a new variable, of to see and to read, getting far ahead of to see and to be seen. She treats with the gulf as a new problem of ‘borderline.’

Usually, the borderline is meant by the fringe area in view from the juncture to cross over any two or more worlds. Literally speaking, a borderline must be an alienated spot from the two area. And so, the word is used as synonymy of rift or gap, so to speak, such as a borderland between one country and others. The borderline as a literal meaning is a resident place for lost people to live on lost subjectivity. To be sure, it must be a place of lawbreakers and escapees with good reasons.

Kim Hey-Young's gulf between to see and to be seen is also meant by these. The artist could lead to pay attention to the meaning of the gulf in a relatively short span of time from the year of 2006 to 2008. But now in the exhibition, she intends to present the gulf with new concept of the borderline of looking and reading, as a new orientation of the pro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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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works of 「The Impossible Possibility Project」 in this personal exhibition, she branches out her last interest to see and to be seen as toward much more broad one of human cognitive world in connection with looking and reading. The title of subtle words, ‘the impossible possibility project’ emphasizes the absurdity of our age and begins with inquiry into human conditions thrown into a swamp of it.

 

Albert Camus said that the absurdity must be an innate idea of our own and the first truth. But not to give way to the situation, say, he who tries to struggle loose from it may be an ideal model to overcome the biggest problems. I think and also hope that in spite of the illogical ground of it, the act to keep to be fearless on his legs toward such an ironical thought and the unintelligible should remains as a future possibility(「Note on works」, 2011, 4).

 

Her recent works incorporate, as her titles imply, several messages to convey a tragic human conditions in our age. The artist intend to send her messages to her audience, which is composed of looking and reading them. She needed to borrow a special methodological means of art. She throws light on the situation of the greatest tragedy of our Korean people and our human being meet with. She gives a happy message to the people who is cut off by the world.

The artist, for the purpose, makes use of Shell Silverstein's ‘The Giving Tree’ as an allegory. She appears herself as a narrative heroine in and out of the works. What the artist himself as a story-teller says in the works is about the tragedy of the only partition of the Korea peninsula in the world. She needed to propose ‘Tree’ as an allegory to solve the tragic. Hence Her recent steel works by a type of ding-bat arrangement.

Here, the recent works give a trial such as an analogical interrelationship with world today high technical science and digital technology have sway over. She makes steel lines and ding-bat letters arrangement come on works as a medium for digital analogy to the science and technology, and to provoke analogically the uncertainties for our new human to meet with.

To see externally, such works stir a trend of new modernism, but in reality, they show extremely the allegorical feature of art necessarily to be prepared. This is a real one with which today's art moves on.

May,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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