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작업노트
<별, 그리고 사랑>
<일곱 가지 사랑 시리즈> 작품에서는 기본적으로 ‘사랑’에 관한 메시지를 전한다.
사랑을 어떻게 인식하고, 수용해야 하는지 고민을 거쳐서 직접적인 메시지를 작품에 담은 것이다.
현대 사회의 문제와 이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은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한다는 생각에서부터 작품 구상을 하였다.
현대 사회는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면서 인간의 삶의 질이 과거에 비해 훨씬 좋아졌다.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최첨단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예전과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신의 목표와 이상을 더욱더 전략적으로 추구하고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교통통신의 발달로 지구 어느 곳이든 하루 안에 갈 수 있는 1일 생활권이 되었고, 인터넷 정보통신의 발전으로 언제든지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습득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정신적으로도 과거에 비해 풍족해졌다고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물질문명이 발전하면서
그에 비례하여 더 많은 문제점과 스트레스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개인 간에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해 집단 간, 그리고 국가 간의 크고 작은 갈등이 훨씬 더 많이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성이 아주 잔인하게 드러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더 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잃어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을 철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국의 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는 저서 <불안한 현대사회>에서 현대 사회가 도래하면서 현대인들이 마주하는 상실감과 몰락의
감정에 주목했다. 경제,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발전을 거듭하지만 왜 우리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지를 질문한 것이다. 그는 ‘개인주의’, ‘도구적 이성의 지배’, 그리고 개인주의와 도구적 이성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정치적 영역’이 현대 사회의 인간이 불안감을 느끼는 세 가지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알랭 드 보통 역시, 그의 저서 <불안>에서 현대 사회에서 각종 문제가 발생하는 요인으로 ‘불안’을 꼽는다. 알랭 드 보통은 테일러에 비해 심리적 측면에서 접근을 했다. 그는 인간에게 불안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사랑 결핍’, ‘속물 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우리는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찰스 테일러와 알랭드 보통의 주장을 통해 되돌아볼 수 있다.
현대 사회의 물질적 풍요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더 큰 부담감을 안겨준 것이다. 남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과거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한 부유한 인간으로 되기를 원하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 정신적인 풍요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로 인해 현대 사회의 ‘불안감’은 개인을 넘어 집단적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초래하는 근본적인 요인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알랭드 보통이 언급한 불안의 심리적 요인들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감정을 잘 설명해 준다.
그 예로 우리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멘토를 하나 정하고 그를 우주의 큰 별인 하나의 ‘태양’으로 생각하게
하면서 따르게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그 하나의 태양이 되어야만 할까?
우리 모두 단 하나인 태양이 되려고 애쓰다 보니 어제의 친구를 오늘의 적으로 짓밟아야 하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진정 각자의 인생에서 더 빛날 수 있는 것은 남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닐까? 아울러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더 아름다운 별이 되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자기 자신이 별이며, 그 자리에서 은은하게 빛날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무조건 승자만 주목 받고 사랑 받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자유롭게 꿈꾸고 도전해야 할 젊은이들에게마저도 사회적 기준에 맞는 것만 강요하고 주문한다. 그들의 불안감에 짐을 더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기적인 개인주의와 속물근성만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풍토는 더 많은 이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 오히려 우리의 중요한 숙제는 세상이 제시하는 가치관보다 하나님이 제시하는 가치관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는 현대 사회의 세태에서 자기 자신의 가치와 모든 존재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만 한다. 절대자가 보여주신 ‘사랑’을 통해서 말이다. 이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은 무용지물이다. 우리가 아무리 전문적인 지식과 모든 것을 알고 믿음이 있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쓸모 없는 것이다. 많은 것을 갖고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가진 것을 자랑만 할 뿐,
나와 남을 유익하게 하는 데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소유물은 언젠가 멈추겠지만 사랑은 그치지 않는다. 올바른 사랑을 깨닫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의 사랑은 끊임없이 널리 전파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커다란 힘이 될 수 있다. 특히
나이가 먹으면서 더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을 받는 것에만 익숙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버려야
한다. 사랑을 진정으로 깨닫고 주변인과 자신이 속한 사회에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사랑’의 의미를 관객에게 전하고자 한 <일곱 가지 사랑 시리즈>에서는 메시지의 전달방법이 이전의 작업에 비해 좀 더 직접적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나는 7가지의 사랑에 관한 나의 정의를 작품에 담아냈다.
하지만 이는 분명 ‘암시’를 함으로써 관객이 메시지를 인식하고 자기 해석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다.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함으로써 작가와 관객이 작품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나의 각 7가지 작품 속에 담은 사랑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1. 사랑은 상대방에게 맞춰주는 것
2. 사랑은 상대방의 허물을 가려주는 것
3. 사랑은 섬기는 것
4. 사랑은 인내하는 것
5. 사랑은 함께 있는 것
6. 사랑은 기다려주는 것
7. 마지막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위의 7가지 메시지는 작품 속의 주요한 주제이자 메시지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관객에게 왜곡 없이 직접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전통적 회화가 가진 기본적 특징이나 관객의 해석에 따라 다양해질 수 있는 해석의 자율성의 한계를 넘어 바로 프레임 자체에 자음과 모음을 수직선에 표시해 두고, 이에 따라
관객이 자신만의 인식 프로세스를 통해 해석하기보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받게 만든다.
그리고 나서 후에 관객은 자신의 인식 프로세스를 작동시키게 된다. 이는 이전에 비해 관객과 소통이
잘 되는 회화적 표현이다. 따라서 천지인 형태의 자음과 모음의 지시표가 작품 왼쪽과 오른쪽의 수직선에 나타나고, 작품 내에는 높낮이 바(Bar)가 각각의 자음과 모음을 표시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작품에 담긴
문장을 ‘해독’하지만 그보다는 상대적으로 쉽게 ‘독해’할 수 있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는 작품을 통해
작가와 관객의 의사소통 기능을 높일 수 있는 특징이 된다. 보는 것과 읽는 것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주요 메시지 전달 기능을 하는 높낮이 바(Bar)는 빅뱅의 뮤직비디오에서 노래 음성의 높낮이에 맞춰 바의 형태가 변형되는 영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비록 회화 작품에서는 음성을 담을 수 없지만,
마치 음성이 미술 작품에 담겨진 듯 관객은 자신만의 목소리로 작가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보고 읽음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이 외에도 7개의 작품에 각각 자리를 잡고 있는 금박으로 만든 별은 인간이 꿈꾸는 상징적인 모습을 의미한다. 상대방에게 맞춰주며, 상대방의 허물을 가리며, 상대를 섬기고, 인내하며, 함께 존재하고 기다려주면서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결핍된 올바른 형태의 사랑을 충족할 수 있는 깨달음을 얻는다. 하지만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제1의 요소인 ‘사랑’을 실천하며, 이상적인 나라에 도달할 수 있음을 꿈꾸는 것이다. 물론 각자 추구하는 이상적 목표나 꿈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모두 함께 차별과 증오와 폭력 없이 어우러지며 ‘조화’와 ‘공존’이 가능한 세상을 꿈꾼다. 이것이 바로 이상적인 세상이다.
작품에서 강조하는 사랑의 의미를 깨달으면 좀 더 그 이상적인 세상에 가까워질 수 있다. 하늘 아래에서 모두 평등하듯이, 하나의 태양이 되기를 꿈꾸기보다 각각의 위치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별이 된다면 우리 세상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한낮처럼 밝을 수 있지 않을까? 각각의 별이 자신의 위치에서 반짝반짝 빛나면, 아무리 어두워도 우리는 길을 잃지 않고 우리의 목표를 향해 한발한발 올바르게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둠을 밝혀주는 가로등이 없어도, 서로 길을 함께 밝혀주는 ‘밝은 공존’이 가능하다. 이렇게 서로 사랑과 이해가 충족된 세상에서 우리는 물질적 풍요에서 얻는 기쁨보다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우리가 꿈꾸는 궁극의 목표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